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카테고리 없음

by kim jin woo 2024. 5. 2. 10:38

본문

외환시장개입, 치열한 물밑 전투의 현장

지난 3일, 외환시장에서 150엔을 넘어섰던 달러/엔 환율이 갑자기 147엔까지 떨어졌습니다. 환율이 치솟자 일본은행이 외환시장개입에 나선 것이란 추측이 나왔지만, 간다 마사토 재무성 재무관은 "코멘트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죠.

최근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환율이 크게 출렁입니다. 달러/엔 환율은 160엔, 달러/원 환율은 1,5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죠. 급격한 환율 변동에 각국 외환당국은 외환시장개입을 암시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습니다. 그런데 외환시장개입은 누구나 한다는 걸 알지만,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미묘한 조치입니다.
외환시장개입이 뭘까?
정부가 급격한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뜻합니다. 말로 미리 경고하는 구두개입과 실제로 외환을 매매하는 직접개입으로 나뉘죠.  

왜 하는 거지?: 환율이 급변하면 한 나라의 경제 전체가 불안정해집니다. 가령,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물가가 치솟아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고, 급락하면 우리나라 물건의 달러 표시 가격이 높아져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죠. 이렇게 정부는 환율이 어느 한쪽으로 너무 심하게 움직이지 않도록 조절합니다.

일단 첫 스텝은 구두개입: 구두개입이란 정부가 말로 시그널을 주는 행위를 뜻하는데요. 보통 "과도한 환율 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투기성 움직임에 단호히 대응하겠다" 등의 경고를 보냅니다. 이렇게 경고만 해도 어느 정도 환율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는데요. 외환시장 참여자들이 정부의 직접개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말로 안 되면 직접개입: 구두개입에도 환율이 안정되지 않으면 직접개입에 나섭니다. 직접개입은 매도개입과 매수개입으로 나뉘는데요. 만약 환율이 급등하면 정부는 원화를 받고 보유 중인 달러를 팔아 상승폭을 줄이는데, 이를 매도개입이라 합니다. 반대로 환율이 급락하면 원화를 주고 시중의 달러를 사들여 하락폭을 줄입니다. 이를 매수개입이라 하죠.

환율의 방향성을 바꿀 순 없다: 물론 직접개입도 상승과 하락 폭을 줄일 수 있을 뿐, 환율의 상승과 하락 자체를 막을 순 없습니다. 매도개입은 외환보유고의 한계 내에서만 가능하고, 매수개입도 지나칠 경우 시중에 자국 화폐가 너무 많이 풀려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통 외환당국은 급격한 환율변동을 막는 수준에서만 개입하는데, 이를 환율 미세조정(Smoothing Operation)이라고 합니다.

환율 조정의 원리

외화 환율은 외국 화폐의 원화(자국 통화) 가격과 같습니다. 환율도 가격이기에,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요. 외환시장개입은 정부가 외환의 공급을 조절하는 행위입니다. 달러 값이 너무 비싸면 달러를 더 풀어 가격을 낮추고, 너무 싸면 달러를 사들여 가격을 높이는 거죠.



급등한 달러에 분주해진 외환당국
요즘 외환시장개입 뉴스가 많습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했기 때문인데요.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달러 환율 조절을 위해 알게 모르게 시장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고금리에 급등한 달러 가치: 미국은 작년 3월 금리인상을 시작해 5%P 넘게 금리를 올렸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가 최근 긴축 장기화를 시사했는데요. 금리는 통화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시중에 풀리는 달러의 양이 줄고, 달러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달러는 기축통화이자 세계 통화의 중심이기에,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 다른 나라 통화의 가치는 급락하기 마련이죠.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때: 달러/원 환율은 추석 연휴 이후 1,350원을 넘어섰습니다. 미국 국채금리 급등의 영향인데요. 10월 4일 1,360원을 돌파한 뒤 소폭 하락해 1,350원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미 환율이 연고점을 갱신한 만큼, 1,400원까진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일본은 좀 더 심각해: 달러/엔 환율은 일본 정부의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4일 밤 11시 환율이 150엔을 돌파했다가 147엔대까지 밀리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는데요. 일본은행이 개입했다는 추측이 나왔지만, 재무성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일각에선 일본은행이 개입하지 않았고, 차익실현 물량이 나온 것이란 해석도 제기됐죠. 어찌 됐든 환율은 150엔 내에서 방어했지만, 160엔대까진 열어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외환당국은 개입하고 있나?: 각국 외환당국은 환율이 마지노선을 넘어서지 않도록 물밑에서 개입하고 있습니다. 외환당국의 개입 여부는 사후적으로만 알 수 있는데요. 급등하던 환율이 급락한다든가,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든가 하는 것을 보고 미루어 파악할 수 있죠. 우리나라는 8월 말 3개월 만에 외환보유액이 감소했다고 밝혔는데, 그 이유로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조치를 들었습니다. 보유한 달러를 풀어 시장에 개입했다는 거죠. 일본은행은 작년 9~10월 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3일에 걸쳐 9조 1,000억 엔을 시장에 풀어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외환시장개입,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외환시장개입은 보통 비공개로 이뤄져 '복면개입'이라고도 불립니다. 자칫하면 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고, 미국의 환율조작국 레이더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최근에는 외환시장개입이 국제적으로 적절한 정책 수단으로 인정받으면서, 사후적으로 개입 여부를 공개하는 게 관행이죠.

투기세력의 눈을 피하기: 가장 큰 이유는 투기 세력에 정부의 포지션이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환율이 급등세를 보여 외환당국이 상승폭을 줄이려 하는데, 투기 세력이 개입 시점을 알게 된다면 역으로 베팅해 당국의 노력이 수포가 될 수 있습니다. 당국이 달러를 풀어 환율을 낮추자마자 달러를 사들여 환율 상승을 부채질한 뒤, 환율이 오를 때 팔고 나가는 식이죠. 이러면 외환보유고만 탕진해 버리게 됩니다.

눈을 부라렸던 미국: 미국이 과거 눈에 쌍심지를 켜고 환율의 인위적인 조정을 감시했던 것도 이유입니다. 미국은 무역적자 규모가 워낙 커 환율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해 왔습니다. 달러 환율이 높아지면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대만 같은 신흥국 제품의 대미 수출이 유리해지기 때문이죠. 201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대미 무역흑자를 이유로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에 지정하려 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외환시장개입 내역을 공개하기로 했죠. 지금은 3개월마다 사후적으로 개입 내용을 공개합니다.

환율조작국이란?

환율을 자국에 유리하게 조작해 대미 수출을 늘리려는 국가를 견제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입니다. 관찰대상국과 환율조작국을 지정해 운영하며,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각종 제재를 부과받죠.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과거엔 외환시장개입 내역 자체가 비밀이었지만, 요즘엔 조금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수조 원, 일본은 수십조 원을 외환시장에 쏟아붓기도 하며, 아예 한국은행 총재가 개입 사실을 인정하기도 하죠. 이는 국제적인 분위기 변화 때문입니다. 워낙 강달러 현상이 심해 미국 정부가 외환시장개입을 용인해 주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 등 글로벌 금융기구가 외환시장개입을 공식적인 정책 수단으로 인정하는 추세기 때문입니다. 또,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상관관계가 약해지면서 외환시장개입을 견제하는 미국의 명분도 많이 약해졌습니다.



전설적인 외환시장개입 사례
역사적으로 외환시장개입에 크게 실패한 사례와 크게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실패가 먼저였는데, 1992년 전설적인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무너뜨린 사건이었죠. 이후 2003년 일본은 이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환투기세력과 전면전을 벌여 결국 승리했습니다.

환투기세력과 중앙은행: 둘은 적대적 관계입니다. 환투기세력은 특정 국가의 통화 가치가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데 베팅해 돈을 벌어들이는데요. 통화가치가 하락할 조짐이 보이면 해당 통화를 공매도해 하락을 부채질하고, 상승할 조짐을 보이면 매수해 상승을 유도합니다. 이렇게 되면 통화가치가 한쪽으로 급변하는데, 중앙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 혹은 자국 통화를 이용하죠. 투기 세력이 하락에 베팅하면 외환보유고를 풀어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상승에 베팅하면 자국 통화를 풀어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영란은행 vs 조지 소로스
1992년 영란은행은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와 수많은 헤지펀드의 공매도 공격을 받았고, 이를 막지 못해 백기를 들었습니다.

과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유로화 통일 전 준고정환율제(ERM, European Exchange Rate Management)를 운용 중이었습니다. 독일 마르크화를 기준으로 한 환율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중앙은행이 개입해 일정 범위 내로 조절해야 했죠. 그런데 1990년부터 독일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자,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은 이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고 맙니다. 독일이 금리를 올리면 마르크화 환율이 높아지기에, 다른 나라도 금리를 올려야 환율 유지가 가능했는데요.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이었는데 금리를 올리다 경제가 망가졌고, 통화 가치가 폭락하고 말았죠.

그런데 영국은 달랐습니다. 독일과 유럽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영국은 "외환보유고가 넉넉하다"라면서 파운드화 가치를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자신했죠. 조지 소로스는 이 틈을 노렸습니다. 아무리 봐도 파운드화 가치는 떨어져야 정상인데, 영국 중앙은행이 억지로 막고 있다고 본 거죠. 소로스는 100억 달러를 동원해 파운드화를 공매도했고, 월가의 수많은 헤지펀드도 그를 따라 총 1,100억 달러를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했습니다.

영란은행은 사태 초기 외환보유고를 이용해 파운드화를 사들이고, 달러 등 외환을 시중에 풀어 파운드화 가치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소로스와 헤지펀드의 대규모 공세에 외환보유고가 증발하며 백기를 들고 말았죠. 영국은 결국 ERM 탈퇴를 선언하고, 유로화 사용을 포기했습니다.



💣 일은포(日銀砲) 사건
2003년 일본은행은 1년간 무려 300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 환투기 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당시 일본은행이 시장에 돈을 푸는 게 대포를 쏘는 것 같아 '일은(일본은행)+포(대포)' 사건이란 별명이 붙었죠.

2001년 9.11 테러가 터지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나서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휘청였습니다. 달러 가치가 불안정해지면서 대체 자산인 엔화 가치가 급등했는데요. 이때 전 세계 헤지펀드들은 조지 소로스의 성공 사례를 떠올리며 엔화 가치 폭등에 베팅합니다. 가치가 떨어지는 달러를 팔고, 오를 것 같은 엔화를 사들이는 거죠. 이 작전이 성공해 엔화 가치가 폭등할 경우,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크게 약화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죠. 일본 정부는 환투기세력에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결국 헤지펀드는 작전을 밀어붙입니다. 실제로 117엔 수준이던 달러 환율은 105엔대까지 폭락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은행을 통해 1분마다 10억 엔의 엔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사들이며 엔화 가치가 오르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일본은행은 1년이 약간 넘는 기간 35조 엔에 달하는 돈을 시장에 퍼부어 환율 방어에 성공했고, 엔화 상승에 베팅한 수천 개의 헤지펀드는 줄도산하고 맙니다. 사실 이때는 당연히 일본 정부에 유리한 상황이었는데요. 엔화는 자국 통화이기에 무한정 찍어낼 수 있지만, 헤지펀드는 외화로 엔화를 사들여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물론 엔화가 시중에 많이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지만, 당시 일본은 워낙 디플레이션이 심했기에 오히려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외환시장개입이란 정부가 외환을 팔거나 사들여 환율 변동 폭을 줄이는 정책입니다.
최근 미국 달러 가치 급등으로 달러 환율이 치솟자 각국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고금리가 지속하리란 전망에 외환시장개입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외환시장개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최근 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환시장개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데요. 고금리, 고환율이 뉴노멀이 돼가는 시대, 과연 정부와 중앙은행이 현명한 개입으로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